포장의 미학, 크리스토

불가리아 태생인 크리스토 자바체프(javacheff Christo, 1935-2020)는 포장된 물건과 건물과 자연에 다양한 표현 방법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무대 장치를 위한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잠시 파리에 머물던 1958년 모로코 출신의 프랑스 인 잔느 클로드 Jeanne-Claude Denat de Guillebon와 결혼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함께 공동 작업을 해왔으며 1964년 이후 줄곧 뉴욕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초기 그의 작품들은 일상적인 오브제를 감싼 것이었는데, 6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그의 포장 작업은 의자, 상품 진열장 등을 비롯하여 오토바이, 자동차 그리고 떠 있는 애드벌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고 실험적인 포장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그는 대상물들을 포장함으로써 물질의 신비감을 더욱 증폭시켰을 뿐만 아니라 물질이 지니고 있는 본질의 재해석을 통해 사물의 특성을 더욱 강조했다.

1968년부터 크리스토는 커다란 공공건물 포장 작업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는 스위스 베른의 시립미술관을 방수포와 로프를 이용해 포장하는 것으로, <포장된 박물관>이라는 제목으로 실연되었다. 뒤이은 1969년 1월에는 미국 시카고의 현대미술관 포장에 성공했는데, 지붕만 남긴 채 방수포와 로프로 꽉 조여 단단하고 빈틈없는 느낌을 주었다. 크리스토의 공공건물 포장 계획은 대부분 미리 드로잉이나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 제작하여 완성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또한 '포토몽타주 Photo Montage' 를 이용하기도 하고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것들을 팔아서 실제로 포장 작업의 제정에 충당하기도 했다. 크리스토의 공공 건물 포장은 <로마 국립현대미술관>(1967년)을 비롯하여 <뉴욕 현대미술관>(1968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1968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관심을 모아 관람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던 포장 작품은 프랑스 파리의 세느 강에 있는 <퐁뇌프 다리 포장>이다. 이 작품이 맨 처음 계획된 것은 1975년인데, 10년 후인 1985년에 이르러서야 당시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의 도움으로 당국의 허가를 얻어 2주간에 걸쳐 제작되었다. 이 작업에는 무려 4만 평방 미터에 달하는 황금색 폴리에스테르 천이 필요했으며 10여 톤의 보강용 철강 재료와 밧줄 등의 부속 재료가 소요되었다. 그 밖에 약 1천여 명이 넘는 기술자 및 자원 봉사자가 투입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를 선택한 크리스토는 역사적인 미술 행위인 포장 작업과 유서 깊은 유물을 접목시키려 했다고 밝혔다.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포장>도 이목을 집중시킨 포장 작업이다. 국회의사당 포장 역시 원래 1972년에 계획했으나 23년이 지난 1995년에야 실연에 옮길 수 있었다. 이 작품 또한 상당한 재료와 노동력 그리고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던 특정 건물의 포장 작업을 통해 동·서간의 분열과 갈등, 화합과 화해의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했다.

크리스토는 더 넓은 시각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점차 자연환경으로 관심을 돌렸다. 자연환경을 이용한 작품으로는 북부 캘리포니아 소노마 마린 지역Sonoma and Marin Country에 설치한 <달리는 울타리>(1976년)가 있다. 이 작품은 길이가 40km에 달하는 대작으로서 엄청난 수의 나일론 천을 이어서 만들었는데, 폭이 6m인 흰 천조각이 2050개나 소요되었다. 자연 속에 설치하는 포장 작품은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거대한 규모의 공사이면서 작가의 열정과 노력이 그 어느 작품보다 많이 소모되지만, 그것에 비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기는 너무나 일시적이고 작품의 보관에 있어서도 비실용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달리는 울타리>의 감각적인 효과와 자연의 조화는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 외에도 1972년 미국의 콜로라도 주에 있는 리플 근교의 계곡에 V자 형태의 오렌지색 커튼을 친 <계곡의 커튼>이 있으며, 1978년에는 미주리 주 캔사스 시티의 루즈 공원 Loose Memorial Park의 산책로를 덮은 <포장된 산책로>가 있다. 그리고 1983년에도 플로리다 주 그레이터 마이아미의 북부 해안 지역 11개 섬의 가장자리를 핑크색 천으로 뒤덮은 <둘러싸인 섬 Surrounded island>을 완성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