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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조각사

로마 미술 조각(초기 제국시대)

by _____seula 2023. 5. 18.

그리스 조각과 로마 조각의 절충, 아우구스투스 상

인간인지 신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면모를 지닌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상은 인간적인 품위와 신적인 권위가 동시에 느껴지는 로마의 가장 뛰어난 대리석 조각 작품이다. 1863년 로마 근교 프리마포르타의 별장 터에서 발견되어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상으로 불린다. 아우구스투스는 본명이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로, 카이사르의 조카이며 그의 보호를 받았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기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한 후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따라 후계자로 지명되어 공화정 말기의 정치적 혼란과 내란을 진정시켰다. 로마의 초대 황제로 제정 시대를 연 그는 기원전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존엄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았다. 로마시의 질서를 유지하며 대규모 건축 사업에 힘썼던 그는 벽돌의 도시를 대리석의 도시로 만들었으며 41년의 재위 기간 동안 로마의 평화와 내정을 확립했다. 로마의 조각은 초상 조각이 매우 발달하여 흉상, 기마상, 묘비상 등 다양한 형태로 많은 양이 제작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상만 해도 각기 다른 연령은 흉상, 전신 조각 등 50여 개가 제작되었는데 그중 무인의 모습을 한 프리마포르타 입상 조각이 가장 뛰어나다.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상은 대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의 모습을 신성화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헬레니즘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즉, 그리스 고전기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에 의한 콘트라포스토 양식이 답습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각상에는 두 가지의 성격과 전통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 인물의 모습을 묘사한 자연스러움과 신과 같은 절대 권력과 영웅적인 분위기를 지닌 이상화된 성격이 그것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작은 키와 체구, 다소 우수에 찬 표정은 인간적인 체취를 전해주고 있으며, 제정 로마 초기의 솔직하고 현실적인 미적 취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 하나의 측면인 황제의 신성화된 분위기는 그리스 조각의 신처럼 초인적인 힘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상은 로마 조각의 현실성과 그리스 조각의 추상성을 조화롭게 절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장식의 갑옷 역시 황제의 영웅적인 모습을 부족함 없이 담고 있는데, 갑옷의 정면에는 고전적 신화를 상징하는 3단의 부조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오른쪽 다리에 돌고래를 타고 있는 어린아이 조각상이 붙어 있는 것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건국의 주역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선조인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며, 왼손으로 잡고 있는 긴 마대는 황제다운 근엄함의 상징으로 보인다. 갑옷과 망토는 서로 다른 재질감을 보여주고 있는데, 옷주름의 섬세한 표현은 헬레니즘의 고전적인 의상 표현 방법으로서 로마 조각에서도 역시 전형적인 옷주름의 양식으로 적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당당하게 올린 오른팔과 균형 잡힌 왼쪽 다리는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약간 고개를 들어 연설하는 듯한 동작은 자신감을 드러낸다.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로마 조각이 숭고한 규범에 종속되어 있던 그리스 조각에서 점차 벗어나 조각 속에 현실적인 생동감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즉, 예리한 관찰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탄생한 인물상에서 특정한 개인의 성격이 드러나는데, 이 점이 바로 로마 초상 조각의 경이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존하는 로마의 유일한 기마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

우리는 현존하는 로마의 초상 조각을 통해서 당시 인물의 성격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로마의 유일한 기마상이라고 알려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은 황제의 위엄과 고뇌를 훌륭하게 나타낸 작품이다. 로마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게르만족과의 전쟁에 시달렸고 시리아 및 이집트의 전쟁터에서 병을 얻어 도나우 강변에서 운명했다. 전장에서 기록한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적 철학을 바탕으로 한 「명상록」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위한 기념적 작품에는 개선문과 기념 원주 등이 있으나 기마상만큼 보존이 뛰어나지 않다.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로마 유일의 이 기마상은 원래 로마 라헤란 광장에 있었으나 1538년 미켈란젤로에 의해 현재의 광장으로 이전되었다. 높이 4m가 넘는 이 대형 청동 기마상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며 뚜렷한 고전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이 기마상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중세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조각상으로 오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세 기독교인들의 숭상 파괴를 모면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은 르네상스를 비롯하여 그 이후의 기마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전형적인 표본이 되었다. 한 발을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말의 움직임은 생동적이며 그 위에 안정된 자세로 앉아있는 황제는 사색적이고 고뇌에 찬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조각상은 전쟁으로부터 로마를 구하기 위한 황제로서 그리고 전쟁터의 희생을 보면서 전쟁을 증오하는 철학자로서 갈등하는 내면의 심리를 담고 있다. 인간이 갖는 모순 때문에 갈등에 휩싸인 황제의 얼굴 표정을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에서 느낄 수 있는 두드러진 점이다. 활기찬 말에 비해 황제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이는데, 무장하지 않은 평범한 옷차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쟁을 원치 않았던 고요한 기품의 황제를 느낄 수 있다. 더불어 통찰력을 간직한 깊이 팬 눈은 절제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조각상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커다란 크기 때문에 지나치게 육중해 보이는 것과 양감이 다소 형식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인물 내면의 표현은 기마상의 단점을 완화시켜 준다. 인간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원숙하게 표현해 낸 조각가의 재능이 현대의 우리에게도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사적 사건의 기록, 아라파키스의 부조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로마의 궁전과 귀족 저택은 많은 양의 그리스 조각을 모각하여 꾸몄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의 대표 작품들은 이 시기에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며, 덕분에 그리스 미술의 위대성이 재발견되기도 했다. 그리스 조각을 모각하면서 로마 조각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예술적인 시야도 상당히 넓어졌다. 그러나 그리스 조각에 나타난 관념적인 표정과 의식적인 자세와 달리, 로마 조각은 현실적인 사고에 바탕을 두어 매우 사실적이고 개성적으로 인물을 표현했다. 더욱이 조각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로마의 초상 조각 분야는 그리스 조각과 비견될 만한 문화유산으로 기록된다. 또 한 가지 서양 조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로마의 독특한 부조는 현란한 기교와 더불어 사실적인 인물의 표정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 양감이 드러나도록 다소 도드라지게 조각한 고부조와 거리감과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낮고 부드럽게 표현한 저부조를 혼용한 로마의 부조는 현대의 조각 수업에서도 훌륭한 텍스트로 이용된다. 일반적으로 로마의 부조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 부조와 헬레니즘기에 만들어진 페르가몬 대제단의 격동적인 부조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리스 시대에 조각된 부조는 신화의 내용이나 비사실적인 내용인 데 반해, 로마의 부조는 기념 원주와 개선문의 부조에서 보이는 것처럼 국가주의적인 우월함을 다룬 주제가 많으며 또한 당시 현존하는 황제의 영웅적인 모험담이나 전투 장면 등 역사적인 사실을 묘사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부조는 독립적인 형태를 지닌 환조로는 다소 표현이 어려운 기념탑이나 공공건물의 벽, 제단 그리고 석관 벽면의 장식에 적절히 이용되었다. 즉, 부조는 공공장소에서 기념비적인 내용을 담아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로마의 부조 중 널리 알려진 작품은 역사적인 내용을 다룬 <아라파키스(아우구스투스의 평화의 제단)>이다. 원로원이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한 이 제단은 로마의 마루스(현, 나보나 광장 근처) 평야에 세워졌으며, 기원전 13년에 착공하여 기원전 9년에 완성했다. 이 제단은 직사각형으로 건축되었다. 건물의 벽면은 상·하의 프리즈로 구분되어 있는데, 벽면의 하단과 벽기둥에 아칸서스 잎의 장식적 문양(당초문)이 있어서 벽면 윗부분의 부조를 한층 두드러지게 한다. 이 제단에는 로마 건국에 관련된 전설적인 정경을 나타낸 부조가 있으며, 북쪽 벽면의 긴 부조에는 황실 가족과 귀족들이 토가를 입고 로마의 영원한 평화와 풍요를 비는 제례를 위하여 무리 지어 행렬하고 있는 엄숙한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이 군중 부조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 조각 <판아테나이아의 행렬>을 연상하게 한다. 대부분의 인물이 토가를 입고 있는데, 옷들이 마치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유연성과 리듬감을 보여준다. 또한 원근감을 현란한 기교로 구사하는 점도 유사하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그리스 조각가인 피디아스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일명 '피디아스 양식'이라 불리는, 젖은 옷을 입은 듯한 표현을 따르고 있다. 기교적인 형식의 동일성에서 그리스적인 취향을 느낄 수 있으며, 그리스 조각가에 의해서 그리스적 양식을 취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사상적인 면에서는 서로 확연히 다르다. 즉,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판아테나이아의 행렬>은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관념성에 집착하여 초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내용을 강조했다. 당연히 부조 속의 인물들은 신원을 알 수 없는 현실과 거리가 먼 군중들의 행렬이다. 그러나 <아라파키스>의 부조 행렬은 당시 사제들과 아그리파 장군 등 실제 생존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보여준다. 특히 일상적인 행동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나 특정 사건(제단의 제막식 참여)을 표현한 것에서 그리스 부조에 비견할 만한 로마 부조의 리얼리티가 드러난다. 

 

 

모뉴멘탈과 기교의 극치, 트라야누스 황제 기념주

인류의 유적을 보면 상당히 많은 종류의 기념물(모뉴멘트)이 존재한다. 기념탑, 기념문, 기념상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납골당과 건조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며 우리의 눈에 익숙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 같은 기념물 조각들이 건조되는 이유는 그 시대의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보존 욕구와 과시 욕구 때문이다. 로마에는 제각각의 의도와 역사성을 간직한 위풍당당한 기념물이 다수 존재한다. 특히 제정 시대의 로마는 황제의 강력한 통치력으로 번영이 극에 달하자 대외적으로 업적을 과시하고 찬양하기 위해 대규모 건축물 공사가 활발했다. 로마의 기념물 중 높이 40m에 달하는 부조탑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주>는 로마 제국 최대의 판도를 과시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리석 부조로써 로마 미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로마 오현제 중 제2대 황제인 트라야누스는 대내적으로 부국 정책을 폈으며 대외적으로는 국토의 확장을 꾀하여 강력한 제국을 이룩했다. 제국의 판도가 극에 달한 시점에서 아폴로도로스에 의해 광장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그 광장에는 바실리카, 도서관, 트라야누스에게 바치는 신전 등이 건축되었으며 다키아(현, 루마니아) 원정과 정복을 기념하는 황제의 기념주도 세워졌다. 이 기념주는 매우 특이한 양식을 가지고 있다. 황제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전쟁의 전투 장면이 나선형으로 서서히 올라가면서 이어지도록 조각되어 있다. 펼쳤을 때 약 200m에 달하는 부조는 23장면이 조각되었는데, 화면의 높이는 시작하는 밑부분이 90cm 정도가 되고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져 정상부의 높이는 125cm로 늘어난다. 이처럼 높이에 차이를 둔 것은 관람자의 시선을 위해서이다. 위를 쳐다볼 때 밑면부와 정상부의 화면이 똑같은 높이로 보이도록 하려고 했던 것이다. 또한 기념주에는 약 2500여 명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이 연출해 내는 서사적이고 서술적인 장면들이 기교적인 조각 기술과 어우러져 놀라운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저부조와 고부조의 능수능란한 연결과 음양의 조화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조각적 표현이 뛰어나다. 두 번에 걸친 다키아 원정을 서사적으로 담고 있는 이 부조는 주로 군사의 이동, 군사들의 종교의식, 지휘자의 진두지휘와 전투 장면 등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있으며, 두 싸움의 중간에는 승리의 여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기념주의 맨 꼭대기에는 트라야누스 황제 조각상이 있었으나, 중세 때 파괴되었고 16세기에 사도 베드로 성상으로 바뀌었다. 하단의 기초 부분은 황제의 시신을 안치한 무덤으로 되어 있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주는 매우 화려하고 연속적인 리듬감을 가진 부조로서, 로마 조각의 정점이라 해도 손색이 없으며 기념성을 최대한 부각하고자 하는 기념탑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 더욱이 이 기념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록적이고 개념적인 사실주의는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서 중세 미술에 적합한 방법으로 계승되었다. 

로마 미술은 그리스 조각의 전통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었으나, 건축이나 기념 부조, 각종 주화에 내재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취향을 보면 그리스적인 것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그들의 발전적인 창조성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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