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루리아의 분묘 조각, 부부상의 테라코타 관
로마인의 조상인 에트루리아인들의 독특한 미술은 20세기 초 꾸준한 발굴과 활발한 연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탈리아 북부 및 중부지방(현, 토스카나 지방)에 거주했던 에트루리아인들은 기원전 10세기경 소아시아에서 이탈라이 반도로 유입되었다. 점차 세력을 넓혀 많은 도시를 세우고 식민지를 갖게 되면서 기원전 7~6세기경 전성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전 이탈리아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남쪽의 로마 인들에게 정복당하게 되어 각 도시는 로마에 흡수되었으며 점차 독립을 잃게 되었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7세기 무렵 오리엔트와 그리스에서 유입된 문화가 토착화되면서 독특한 미술을 이루었다. 특히 로마 건축의 뼈대가 되는 반원 형태의 지붕인 돔과 돌을 쌓아 만든 아치 양식은 서양 건축에 매우 중요한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영원불멸을 기원하는 이집트인과 비슷한 내세 신앙을 갖고 있었다. 죽은 자를 위한 분묘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분묘를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도 머무르는 곳으로 생각하여 실제 가옥과 비슷한 묘굴을 만들고 시체를 넣는 석관을 만들었으며 그 뚜껑을 테라코타 인체상으로 장식했다. 이러한 납골관은 에트루리아 미술의 소박함과 사실주의적인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이집트 분묘 조각에 비해 살아있는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유명한 <부부상의 테라코타 관>은 19세기 체르베테리의 지하 분모에서 발견되어 복원한 것이다. 기원전 6세기 후반 제작된 약 2m 길이의 대형 작품인 이 테라코타 관은 에트루리아 조각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에트루리아 미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침대 위에 나란히 길게 누워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부부의 포즈에서 친밀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으며, 적절한 비례를 지닌 상체의 표현은 세련된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등신대의 대형 작품을 테라코타로 만들어낸 것으로 보아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부상의 입가에는 그리스 아르카익기의 <코레>와 <코우로스>처럼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으며 눈은 섬세하고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인상은 날카로우면서도 쾌활하지만 다소 위엄 있는 표정도 지니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그리고 인물들의 전체적인 형태는 단단하고 탄력이 있으며 세부적으로 둥글둥글하게 표현되어 있다. 지금은 그 흔적만 알 수 있지만 밝게 채색되어 있었다고 한다.
<부부상의 테라코타 관> 외에도 분묘 조각이 다수 존재한다. 특히 테라코타로 된 신전 장식 조각들이 매우 뛰어나며 에트루리아 조각의 독자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와 같은 대리석 작품은 존재하지 않고 흙으로 빚은 테라코타와 정교한 주조 기술이 뛰어났으며, 이 점이 그리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많은 교류를 하게 된다. 에트루리아인들의 미술은 소박함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사실성이 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의 전형화된 미술 양식과 구분되는 독특한 특징으로,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며 문화의 창조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에트루리아의 걸작, 베이오의 아폴론
로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북서쪽의 고대 에트루리아 도시 유적 베이에서 출토된 <베이오의 아폴론>은 에트루리아 미술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 등신대의 이 걸작은 기원전 500년경의 작품으로 그리스의 아르카익기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그리스 미술과도 교류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부부상의 테라코타 관>과 같이 아르카익의 미소가 엿보이는 점과 오른발을 내디뎌 신속하게 나아가려는 포즈는 낙천적이며 결단성 있는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다소 긴장되고 절제된 근육 표현이나 옷주름의 표현 방법은 힘차고 생동감 넘치는 활력을 표출하고 있는데, 그리스 초기의 작품 <코레>와 <코우로스>에서 보이는 이상적인 면모와는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베이오의 아폴론> 조각상은 석조나 목조가 아니라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점이 특이하다.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그리스와 달리 목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부속물도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덜한 테라코타를 선택했을 것이다. 목조로 된 신전 지붕의 용마루에 신의 형상을 한 테라코타 조각상이 4개 들어가는데 <베이오의 아폴론>도 그러한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테라코타 조각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좋다. 테라코타는 보통 점토를 사용하여 살붙임 작업을 하고 일정한 두께로 만들어 말린 후 초벌구이를 하는데, 일반적인 소성 온도는 600~900℃이며 더 높은 온도까지 올려 굽기도 한다. 테라코타 기법은 조각의 형태, 쓰임새, 특성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사용한다. 작은 작품의 경우는 제작 후 그대로 말려 바로 구울 수 있으나 <베이오의 아폴론>처럼 등신대일 경우 형틀을 만들어 찍어내거나, 일정한 두께로 속을 파내는 기법을 이용한다. 점토 두께를 일정하게 해야 구울 때 갈라지거나 터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베이오의 아폴론>을 살펴보면 부분마다 형태에 적합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떨어져 나간 팔을 보면 따로 만들어 이어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초벌구이를 하기 전에 세부적인 작업으로 마무리를 하고 구운 후에는 생동감을 강조하기 위해 색을 입혔다. 역사적으로 이와 동일한 제작 기법을 가지고 있는 테라코타 작품이 있다. 중국의 진시황릉(기원전 220년 축조)에 부장품으로 묻혀 있던 조각상들로서 이 조각상을 에트루리아 작품과 비교해 감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한편 에트루리아는 테라코타뿐 아니라 금속의 주조 기술도 매우 뛰어났다. 귀금속을 이용한 장신구 등에 금속 세공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로마 건국과 관련이 있는 <카피톨리노의 암늑대> 조각상은 탁월한 주조 기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에트루리아 미술의 특징은 한마디로 소박하면서도 생동감과 활력을 전달해 주는 것에 있다. 그리스 시대 아르카익기와 동일한 미술 양식을 공유했던 때부터 기원전 3세기 로마에 병합되기까지 이어져 왔던 에트루리아 미술은 로마 미술의 원천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에트루리아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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