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주의의 보치오니
20세기 초 일어난 전위 예술 운동인 미래주의(Futurisme)*는 1909년 이탈리아 시인인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 1876-1944)가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피가로에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미래주의는 '기계 문명에 알맞은 표현은 속도와 다이내믹한 힘의 감각'이라고 주장했고, 과거의 예술에서 과감히 벗어나 공격과 투쟁, 파괴 정신을 중요하게 여겼다. 마리네티는 "달리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니케(승리의 여신)>보다 더 아름답다"며 기술적인 운동과 리듬을 예찬했고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등 과거의 것을 보존하는 기관을 버리자고 주장했다. 선언문이 미학적 관점에서 돌출된 것은 아니었고, 그 후 미래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조형적인 관심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미래주의를, 대상의 물질성을 파괴해서 그 대상의 면에 '운동'이라는 동시성을 표현하려는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이러한 미래주의의 '운동'은 다다(Dada)를 비롯하여 20세기 예술의 양식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1910년 마리네티의 선언문에 동조하여 보치오(Umberto Boccioni, 1882-1916), 카라(Carlo Carra, 1881-1966), 루솔로(Luigi Russolo, 1885-1947), 발라(Giacomo Balla, 1871-1958), 세베리니(Gino Severini, 1883-1966) 등 5명의 이탈리아 화가들은 '회화에 관한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했다. 그들은 선언문에 동적인 리듬감을 부여하는 역동적인 감각을 표현해야 한다며 회화의 혁신을 주장했다. 이들 중 보치오니는 1911년 마리네티와 함께 파리를 여행하면서 브라크, 피카소, 아키펭코와 만나고 1912년에는 브랑쿠시, 뒤샹, 비용과 교류했으며 제1회 '미래주의 회화전'도 개최한다. 이 전시를 통해 용기를 얻은 보치오니는 '조각의 미래주의 선언'을 하게 되었는데 이 선언문은 조각 원리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1914년에는 「미래주의의 회화와 조각」이라는 중요한 저술을 남기기도 했는데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다른 점을 이론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실제의 제작과 이론 면에 있어 미래주의 작가 중 가장 뛰어났던 보치오니는 조각에 운동을 도입시켰으며 아울러 어떠한 재료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구성주의 원리에 접근했다. 즉, 지금까지의 정적이고 고전적인 형태의 우아한 조각에 반대하고, 동적이면서 시간과 속도의 개념을 표현하는 동시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재료에 있어서도 대리석과 ㅊ청동을 버리고 시멘트, 헝겊, 유리, 전기 광선 등 다양한 재료의 사용을 주장했다. 스스로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재료들을 조합하여 작품을 제작했는데 <경주용 말의 역동성>(1914-1915)이 그 예이다.
조각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의 전개를 통해 시간을 표현해낸 보치오니의 대표 작품에는 <공간 속의 병의 전개>(1912)와 <공간 속에서 연속되는 특이한 형태>(1913)가 있다. <공간 속의 병의 전개>는 정면에서 감상하도록 되어 있는데 병의 내부 공간을 드러냄으로써 병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나선형의 리듬감을 보여주는 동적인 전개는 시간적인 요소의 도입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작품 <공간 속에서 연속되는 특이한 형태>는 비바람 속에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걸어가는 운동의 연속적인 표현으로서, 시간의 경과에 따른 운동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운동으로 연결된 볼륨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움직이는 인체의 분해는 속도를 느끼게 해주며 또한 과감하게 변형된 인체는 초현실적인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보치오니는 조각에서 운동과 공간이라는 문제를 발전시켜나갔다. 조각은 공간에 의해 점유되고 실제로 거기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보치오니의 조각은 시간, 속도, 음향을 포함한 기억과 공상의 세계를 현실과 이어보려는 시도로 일관되어 있으며 미래에 대한 강력한 도전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점은 후에 다다, 초현실주의, 키네틱 아트, 팝아트, 환경 예술 등의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었으며 전위 예술(Avant-garde)의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보치오니는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기에 군사훈련 도중 말에서 추락하여 1916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조각에 대한 그의 혁신적 사상이 20세기 새로운 조각의 성격을 규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래주의/미래파(Futurisme): 20세기 초부터 1915년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전위 미술 운동으로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입체주의가 유행한 것과 때를 같이 하여 1909년 시인 마리네티가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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