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조각의 시작, 브랑쿠시의 키스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 '인간을 위한 예술'이라는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조각에 있어서도 종래의 것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가능성의 모색이 일기 시작하면서 추상 조각의 출현이 대두되었다. 조각의 경향은 로댕으로부터 이어지는 구상 계열과 새롭게 등장한 추상 계열로 구분되었고, 추상 조각은 오늘날까지 계속 심화되고 발전되어 왔다. 이 새로운 조각은 움직이는 조각, 순수한 조형적 구성, 공간의 문제 등 다양하고 혁명적인 수법을 창조하면서 진전되어 왔다.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는 최초의 추상 조각가로서 그의 예술성은 입체주의, 구성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그리고 1950년 이후의 앵포르멜과 액션 페인팅, 환경 미술, 개념 미술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브랑쿠시는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7세에 미술을 시작했다. 1904년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에 정착하며 작품 제작을 하던 중 로댕에게 인정받아 조수가 되어 달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큰 나무 밑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는 말로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브랑쿠시는 로댕을 존경했으며 그의 작업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다. 또한 야수파와 입체파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조각 기법을 만들어나갔다.
그의 초기 작품은 주로 흉상 조각으로, 전통적인 것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점차 눈과 입의 암시적인 표현을 통해 형태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극도의 단순화를 보이는 추상성에 도달했다. 그러나 브랑쿠시는 재료만큼은 전통성을 고수했다. 1910년경 대리석과 금속을 사용하여 대담한 추상 조각을 제작했는데 달걀꼴을 변형시킨 <신생>과 <세상의 시초>, 그리고 새를 모티브로 한 <공간 속의 새>가 그것이다. 이 작품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극단적인 단순성에 집착을 보이면서 그가 추구하고자 한 것은 사물의 본질이었다. 또한 견고하고 간결한 형태의 이 작품들을 받침대로부터 구분하여 개별 작품이 되도록 했는데 이때 브랑쿠시는 받침대에 재해석을 시도했다. 원통형 대리석, 십자가 형태, 다면체로 깎은 나무들을 차례차례 쌓아 올려 받침대의 역할을 확장시켰다. 이후 이러한 받침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조각물이 되었다.
<무한주>가 바로 그것인데, 현대적인 반복과 리듬의 조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브랑쿠시의 신비스럽고 근원적인 주체 의식을 반영한다. <무한주>는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닌, 작가의 의도에 의해 하나의 작품으로 정의될 수 있다는 현대적 조형 개념인 미니멀 아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조각과 주위 환경을 밀접하게 연관시켜야 한다는 공간 개념 의식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형태의 단순화와 추상화라는 형식적인 시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키스> 시리즈이다. <키스>는 1907년부터 시작되어 모두 8점이나 만들어졌으며 6점은 석조로 제작되었다. 로댕의 에로틱한 사실주의 조각 <입맞춤>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전혀 다른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1907년 브랑쿠시는 파리에서 최초로 작품 주문을 맡게 되었다. 몽파르나스 묘지의 묘비였는데, 여기에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미지의 <키스>가 탄생한 것이다. 단순한 남녀의 석상인 <키스>는 과거와의 단절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독특한 상징성을 띄고 있다. 초기의 <키스>는 거친 질감과 세부 묘사 등 약간의 사실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15년에 제작된 네 번째 작품은 단순화가 반영되어 눈은 하나로 합쳐지고 코도 입도 보이지 않으며 다리도 없이 무릎만이 붙어 있다. 밀도감 있는 단순화와 강렬한 상징성을 통해 주제를 추상화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점점 극도로 단순화되어 마치 두 개의 석주가 끌어안은 것 같은 형상의 추상 조각에 도달했다. 결국 이 <키스> 시리즈는 1936~1938년 사이에 세워진 루마니아의 한 공원에 있는 <키스의 문>에 그의 모든 독자적인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
본질적인 형태의 질서를 존중했던 브랑쿠시의 세계는 현재까지 다양한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예술은 큐비즘적 요소를 품고 있으며 고전적인 완전성도 가지고 있고, 불교적이고 원시적인 상징성도 띄고 있다. 브랑쿠시의 감각적인 예술은 아르프, 헨리 무어, 바바라 헤프위드 등의 조형 세계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밖의 많은 조각가들에게 실험적인 조각의식을 심어주었다. 또한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조각 예술의 전개에 있어서 로댕과 헨리 무어 그리고 브랑쿠시는 현대 조각의 의의와 위치를 명확하게 보여준 전환점이 되었다. 브랑쿠시의 가장 단순한 작품 <세상의 시초>에 붙여진 <맹인을 위한 조각>이라는 부제를 통해 우리는 브랑쿠시가 표현하고자 했던 조각의 본질을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조각은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는 것이며 더불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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