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잘레스(Julio Gonzalez, 1876~1942년)는 1876년 스페인에서 금속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0년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하여 아방가르드 운동에 자주 참가하면서 국적이 같은 피카소와 절친한 친구로 지내게 된다. 피카소에게 자극을 받으며 조각가의 신념을 키워나갔고, 철조각의 개척자로서 견습 과정을 성실히 거치면서 한편으로는 피카소에게 금속 용접 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곤잘레스의 경우 49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조각에 손을 댔으며 세간의 평가도 매우 늦었고 사후에 더 많은 주목을 끌었다.
곤잘레스는 노동자였으며 장인이었고 동시에 예술가였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 속에 큐비즘을 끌어들여 작품화했다. 그리고 점차 초현실주의를 반영하면서 인간의 자유를 박탈한 산업 사회의 정신적 요소들을 표현했다. 또한 구성주의에도 동화되면서 표현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와 같이 다양한 시대적 태도와 방법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만의 요소인 시적인 힘과 아이러니한 특질들, 그리고 깊이 있는 내적 자아 등을 부각시켜나갔다.
회화로부터 시작했고 석조 교육을 받았던 곤잘레스는 이를 포기하고 철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프랑스의 한 공장에서 일하며 금속 용접 기술을 배우게 된 곤잘레스는 1920년대 후반 금속판과 금속봉들을 용접하여 선적인 형태의 조각들을 창안했다. 곤잘레스는 산업 기술과 자신이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장인 기술의 균형으로 재료와 형태, 내용이 조화를 이루는 창조적ㅇ니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20세기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재료인 철은 현대 사회의 힘의 상징이며 문명화된 물질이다. 철의 사용은 타틀린이나 아키펭코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을 자르고 두드리고 뚫고 용접하여 본격적으로 작품을 제작한 것은 가르갈로(Pablo Gargallo, 1881~1934년)와 곤잘레스였다. 그들은 문명화의 상징인 철을 사용하여 물질의 힘을 강조하려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거친 힘을 보여주려 했다.
1930년대 곤잘레스의 절조는 큐비즘의 영향이 두드러졌으며 구상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고뇌와 회의에 찬 인간 형상인 마스크들을 제작했고 <광대>, <머리 빗는 여인>과 같은 희극적 분위기의 구상적 요소들을 보여 주기도 했다. 하지만 30년대 후반에 합리적이고 명쾌한 구조로 바뀌는데 <큰 못을 든 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생애 마지막 12년 동안은 사실적인 두상 제작에 힘을 쏟는데, <몽세라>와 <울부짖는 몽세라> 등이 그것이다. 스페인 내란의 고통을 표현한 <몽세라>는 공포와 슬픔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동시에 보여주는 직설적인 표현의 작품이다.
곤잘레스의 중요한 작품 <천사>는 전후 젊은 조각가들이 공간의 의식화라는 관점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선적인 구조의 작품이다. 철을 두드리고 때려서 용접한 이 유머스러운 형태의 <천사>는 조각의 새로운 공간을 의식화한 것이다. 기존의 조각처럼 덩어리로 보이기를 거부한 <천사>는 곧 '공간 속의 드로잉'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또 다른 작품 <관대한 모성애>, <머리 빗는 여인> 등도 선적인 요소들이 모여 선의 드로잉을 보여주는 조각들이다. 곤잘레스의 작품들은 공간의 구성과 자유로운 상상력, 신랄한 묘사, 조화와 부조화를 이루며 그 시대의 보편적 진실들을 보여주었다. 재료에 있어서도 종래에는 감히 사용할 수 없었던 연철을 조각의 중요한 매체로 고정시킨 업적을 이루었다. 또한 미국의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1906~1965년), 타지리(Shinkichi Tajiri, 1932년~) 등 많은 철조각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격렬하고 표현성이 넘치는 작품들을 창조해내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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