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대한 탐구 폰타나
강렬한 불꽃을 내뿜으며 발사된 총알과 관통된 금속판의 총알 구멍 흔적은 단순과 반복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캔버스 위의 활동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보인다. 또한 예리한 칼날로 찢겨진 단색 캔버스 위의 인위적인 작품 공간은 작가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작품 <구멍 뚫린 캔버스>와 <칼로 베인 캔버스>는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의 캔버스를 대하는 태도와 공간에 대한 탐구심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자기가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칼로 캔버스 가운데를 찢었는데 이 우연한 행위가 창작 방법을 제공해준 계기가 되었다. 1940년대 말과 60년대에 걸친 폰타나의 캔버스에 대한 과잉 태도는 당시 이탈리아 미술계에 매우 민감한 반응과 충격적인 효과를 던져주었다. 1899년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한 폰타나는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주하여 그곳에 정착한다. 1947년 그는 밀라노에서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과 '공간'이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미술의 새로운 흐름(공간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화가면서 조각가이기도 한 폰타나는 캔버스에 칼자국을 넣은 작품들 이후 조각에도 공간주의 개념을 이입시켰다. 그는 '공간 개념'을 가지고 회화와 조각 시리즈 작품을 약 2천여 점이나 제작하여 공간주의가 국제적인 앙식으로 퍼져나가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입체 작품에 구멍이 뚫린 구조물을 선보였는데 회화에서와 같은 양식을 동일하게 조각에 적용한 것이다. 길게 칼로 베어진 <어떤 절단>이라는 평면 작품 이후 입체에서 공간에 대한 실험 작품으로 1968년 <공간 개념>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추상적인 형태의 육중한 구에 빠른 속도로 흔적과 틈새를 남김으로써 공간성을 주었다. 단순히 물체에 흠집을 가한 상태로 이해하기보다는 의도된 행위를 통해 작품의 공간 개념을 정의하려 했던 폰타나의 미적 태도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폰타나는 이러한 개념을 '공간을 가로질러 벗어나는 형태'라고 명명했고(1947년 제1선언) 4차원의 공간을 나타내는 구멍, 틈새 그리고 빛, 음향을 시간과 운동 속에 내포시키는 새로운 미학을 예고했다.
폰타나에 대한 반응은 분분하다. 천재의 모험심으로 보기도 하지만 미술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행위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간은 회화도 조각도 아니라 공간을 전파하는 형태, 색채, 음향이라고 정의한 폰타나의 의식을 의미있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있다.
조각의 수평적 확장 안소니 카로
"나는 알았다. 받침대 없이 조각의 일부로 바닥을 이용한다면 조각은 좀 더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영국의 조각가 앤서니 카로(Anthony Caro, 1924-2013)의 조각과 환경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느 것으로, 조각 자체의 설치 환경을 되새겨보게 하는 말이다. 조각 작품에서 작품을 보호하는 받침대, 즉 좌대는 매우 자연스러운 부속물의 일부로 고대 조각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좌대의 구실은 공간 안에서 작품의 양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과 동떨어지게 좌대를 현란하게 장식하거나 좌대 자체를 거대하고 위압적으로 보이게 하여 제작 의도를 벗어난 예도 있었다. 하지만 조각 작품의 좌대는 평면 회화를 감싸는 틀처럼 매우 오랫 동안 조각가들에게 당연시되어 왔고 작품의 일부분으로 여겨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조각에서 좌대를 없애고 대담하게 수평면의 바닥에 작품을 펼쳐놓아 기존의 조각 전시 방식에서 탈피한 조각가가 있었는데 바로 앤서니 카로였다. 그러나 그에 앞서 20세기 초 추상조각의 선구자 브랑쿠시도 작품대의 제거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여 현대 조각의 형식적 탐구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 후 좌대를 없앴던 앤서니 카로의 실험은 한정된 공간만을 점유했던 과거의 조각에 광활한 대지를 포함하는 수평적 확장이라는 공간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앤서니 카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조각계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조각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앤서니 카로는 60년대 철을 이용하여 추상적인 조각을 선보였던 미국의 철조각가 데이비드 스미스와 함께 새로운 경향의 구성적 형식미를 갖춘 철조각가로 대표된다. 1951년부터 헨리 무어의 조수로 들어가 조각의 전통적인 볼륨과 공간성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 점은 훗날 앤서니 카로의 구성적이고 조형적인 작품 경향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앤서니 카로가 사용하는 재료는 철이었는데, 투박하고 거친 철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이용하여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1956년 런던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왕성한 작업 활동을 보여준 카로는 1959년 미국을 여행하면서 철조각가 데이비드 스미스와 그 밖의 여러 조각가와 비평가를 만나면서 미국의 현대 미술을 접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좌대를 없애는 조각 작품을 선보였다. 60년대에 카로는 다양한 금속을 이용하여 본격적인 철조각을 보여주었다. 건설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H빔이나 철관, 파이프, 그물 모양의 철망 등 여러 종류의 재료를 자유자재로 다루어 추상형태를 만들었다. 구조물을 매끄럽게 다듬어 완성도를 높였으며 무겁고 둔탁한 철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등 원색의 강렬한 색을 입히기도 했다. 그물형 금속이나 쇠창살을 이용하여 철판의 답답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도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 <어떤 이른 아침>은 62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수평적이고 수직적인 구도를 모두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어떤 위치에서 감상하느냐에 따라 조각적인 구성이 되기도 하고 회화적인 구성이 되기도 하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는데, 빨간색 페인트를 이용하여 색채를 줌으로써 작품을 하나의 통일된 요소로 느끼게 했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카로의 작품 경향은 상당히 변화한다. 철판을 절단하거나 용접했을 때 발생하는 거친 자국들을 그대로 넘겨 작품의 표현 요소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용접된 철조각 작품의 설치로 열린 이미지의 공간을 창출해냈는데, 조각이 단절된 공간에서 벗어나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공간 속으로 전개되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카로는 철저하게 문명의 산물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조형성을 탐구하는 진취적인 작업 태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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