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진보적인 미술은 매우 다양한 형태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기성품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팝 아트에서 단순미를 추구했던 미니멀리즘의 영향에 이르기까지 현대 미술의 흐름은 개념적이고 환경적이며 비미술적인 형태를 지향했다. 새로움을 지향하는 예술은 항상 충격적이고 돌출된 경향을 내포하고 있으며 발견과 발명의 연속으로서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했다.
1960년 후반 영국과 독일을 주축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시도된 '대지 미술'은 일명 'Earth Work' 혹은 'Land Art'라고 불리는데, 이 새로운 미술은 환경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다. 광활한 대지, 강, 바다, 하늘 등 무한한 자연환경의 영역을 예술의 실험 무대로 포함하게 된 것이다. 환경의 이용은 현대 미술에서만 시도된 것은 아니다. 신석기 시대 영국의 <스톤 헨지>는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보여준 좋은 예이며 인공으로 조성된 유럽 궁전의 정원, 호수 그리고 인간의 편리를 위한 모든 환경의 변화도 여기에 속한다.
대지 미술은 편리한 관람을 유도하는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벗어나 있으며 실내 조각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공 조명과 일정한 공간, 일정한 규 모 등을 배제한 채 적극적으로 실외와 자연환경을 이용하고 있다. 이 점은 보편적인 미학을 포기하고 새로운 미학을 지향한 미니멀 아트와 개념 미술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지 미술의 강한 실험성은 반문명적인 성격을 바탕에 두고 있는 데 대표적인 작가로는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 1938-1973), 마이클 헤이저(Michael Heizer, 1944~), 데니스 앤오펜하임(Dennis Oppenheim, 1938-2011), 리처드 롱(Lichard Iong, 1945~) 등이 있다. 거칠고 순수한 대지를 이용하여 작품을 완성했던 헤이저는 미국 네바다 주에 있는 사막에 일정한 깊이로 땅을 파내고 다시 그 자리에 커다란 돌덩어리를 놓는 작업을 했다. 이 작품은 〈이동되어 다시 놓인 덩어리>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작품 <이중 부정>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개념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자연환경이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헤이저의 작업은 60년대 기성품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물질을 지향했던 팝 아트에 반발한 작업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헤이저는 몇십 톤에 달하는 무거운 육면체의 돌덩어리를 설치하는 행위를 통해 자연적으로 변해가는 대지의 추상성에 관심을 두었다. 이것은 어떤 주제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미니멀리즘적인 요소와의 연관성을 뚜렷이 느끼게 한다.
잘 알려진 미국인 대지 예술가 스미슨은 미술관을 '문화적 감옥'이라고 표현하며 자유로운 창조를 위해 인위적이지 않은 '환경'이라는 공간을 택해 대규모 작업을 수행했다. 1970년에 완성된 미국의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 Great Salt Lake에 있는 <나선형 방파제>는 길이가 460m로, 규모와 크기가 기념비적이다. 붉은색을 띠는 소금 호수에 현무암으로 나선형 제방을 쌓은 것으로,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공중에서 내려다 봐야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 다. 스미슨은 이 작업을 위해 6천 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재료와 많은 건축 장비를 동원했다. <나선형 방파제>가 지니는 나선형의 단순한 형태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함과 연속성의 표현이며, 호수의 전설(그레이트 솔트 레이크는 커다란 바다와 연결되어 있으며 위험한 소용돌이가 숨어 있다고 전해짐)을 상징하고 있는데, 조각이 그 지역의 환경과 문화적 요소, 역사적 이야기 등을 포함하여 제작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1973년 새로운 대지 작업을 위한 현장 조사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스미슨은 예술을 대지 위로 끌어내려고 투쟁했고 그 자신 또한 대지로 몸 을 내던지는 최후를 맞이했다. 자연을 창조적인 재료로 이용한 대지 미술은 환경적인 면을 지나치게 고려한 나머지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지 미술은 영구적으로 보존되지 못하고 단기일 내에 철거해야 하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작품이 제작되는 순간부터 서서히 변형되어 해체되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두는데, 이 모든 기록들까지도 하나의 작품의 구성 요소로 인정해야 한다. 특히 대지 미술은 장소, 위치, 크기, 지역 등 자연적 조건과 예술가들의 계획이 밀접하게 연관되어야 실패 없이 작품 제작을 이루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대지 미술가들은 자연환경에 끊임없는 관심을 쏟으며 의 미를 부여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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