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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조각사

아상블라주 조각

by _____seula 2023. 6. 25.

아상블라주 조각 에드워드 키엔홀츠와 루이스 네벨슨

현대 미술 속에서 입체나 평면을 포함한 다양한 실험 예술 활동에는 대부분 오브제가 등장한다. 특히 산업 폐기물과 일용품의 이용은 더 이상 어색하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설치 미술에서는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물체가 이용되고 때에 따라 기성 물체를 확대, 복사하여 작품화함으로써 물질 숭배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처럼 오브제가 예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재료로 연구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오브제의 등장을 살펴보면 1910년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한 큐비즘의 콜라주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뒤샹의 오브제는 모든 예술적 고정관념을 뒤바꿔놓고자 한 작가의 야심을 충분히 전달해주었다. 이후에도 많은 작가들이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오브제 예술을 발전시켜왔다.

그 중 아상블라주 Assemblage는 기성 제품을 집적하고 해체하여 물체 본래의 사용 목적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를 부각시키는 독특한 영역이다. 아상블라주는 고도의 산업화를 이룬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그 흐름이 주도되었다. 1961년 뉴욕에서 기획된 아상블라주 전시는 미국의 소비 사회에서 비롯된 인간성 소외와 상실 그리고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시화했다. 작가로는 존 체임벌린, 조지 시걸, 루이스 네벨슨, 에드워드 키엔홀츠 등이 있는데 자본주의 산업 사회의 현실을 직시한 구체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에드워드 키엔홀츠와 루이스 네벨슨의 작품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폐품과 기성품을 조합하여 문명을 비판하고 인간 실존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 1927-1994)는 아상블라주 작가 중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1927년 워싱턴에서 출생하여 무수히 많은 직업을 거쳐 예술가가 되었으며 초기에는 회화 작업을 주로 했던 화가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고 성에 대해 폭력적이고 은유적인 사회적 관점이 묘사되어 있으며 도시와 그 안의 인간을 자유스럽고 때로는 당혹스럽게 표현했다.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난 그의 작품으로는 정신 병원의 끔찍함을 다룬 <주립 병원>과 고독하게 산고의 고통을 겪고 있는 젊은 산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생일> 그리고 1980년 작품 <여자가 붙어 있는 청동 핀볼 게임기> 등이 있다. 이 긴 제목의 작품은 전자 게임을 하는 오락대에 여자의 다리를 조립해놓은 것으로 여성을 모독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키엔홀츠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현대 문명 사회 안의 각양각색의 인간 존재를 다양한 재료를 통해 표현해냈다는 점과 사회 불안과 부조리에 따른 인간의 심리 상태를 극명하게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핵심은 문명의 이면을 폭로했다는 데 있다. 

아상블라주 작품들은 그 특성상 폭넓은 재료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물질의 시각적 자극은 미술이 자본주의 문명의 본거지였기에 가능했으며 또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 안에서 키엔홀츠는 안업 폐기물, 쓰레기, 오브제를 이용하여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루이스 네벨슨(Louise Nevelson, 1900-1988)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주목받은 미국의 아상블라주 작가이다. 러시아 태생인 그녀는 190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결혼 후 뉴욕에 정착하여 여러 분야의 예술을 배우고 접하게 된다. 특히 1932년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가 뉴욕에서 벽화 제작을 할 때 조수로 일했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멕시코를 방문하기도 했다. 네벨슨의 1940년 초기 작품은 큐비즘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 멕시코 및 원시 미술의 영향으로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1950년대 초에 나무 도막, 책상, 의자의 부품, 낡은 상자 등 나무 재료를 가공한 오브제를 이용하여 네모난 상자 안에 구성하는 작품을 만들었고 이것이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흰색으로 이루어진 <Dawn의 결혼 피로연> 시리즈와 <왕조의 황혼>시리즈는 일정한 크기의 상자 안에 나무 도막들을 구성하여 채색한 작품이다. 특히 <왕조의 황혼> 시리즈는 눈부신 황금색으로 채색되어 찬란했던 왕조의 부귀영화를 떠올리게 하며 종교적인 위엄마저 엿보이게 한다. 이처럼 집적과 조합이라는 제작 방법을 이용한 그녀의 작품은 고대의 가구를 연상하게 하는 신비한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으며 그녀를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아상블라주 작가로 알려지게 했다. 네벨슨은 당시 유행하던 금속 조각과 달리 목재 조각을 보여줌으로써 조각가로서 독특한 위치를 지켜나갔다. 그러나 명성에 걸맞게 많은 야외 조각 작품을 의뢰받자 나무 대신 금속을 사용하여 환경과 작품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접히고 휘는 금속의 성질을 잘 이용하여 더욱 추상적이고 거대한 작품들을 제작해나갔다. 네벨슨이 즐겨 다루었던 <Shadow>, <Black>, <Moon> 등의 환상적인 테마는 유물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건축적 구조 속에 녹아들어 지나간 역사의 환영을 되새겨보게 한다. 

 

 

폐품 조각 아르망의 장기 주차장

누보레알리즘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아르망의 예술은 196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아상블라주의 유행과 함께 프랑스의 현대 미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새로운 미술의 흐름에는 전통적인 인습에서 벗어나 미의 새로운 의미 체계를 이루려 했던 미국의 네오다다이즘과 산업 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팝 아트가 있었다. 이러한 미술계의 흐름과 때를 같이하여 프랑스의 미술 역시 오브제를 이용한 물체의 집적과 조합을 다루는 아상블라주가 새로운 미술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오브제를 이용한 아상블라주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도는 20세기 미적 체험의 기준을 변화시키는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조각가 아르망 페르난데스(Armand Fernandez, 1928-2005)는 세자르, 이브클라인과 함께 프랑스 누보레알리즘의 기수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아상블라주 조각의 독보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1955년부터 여러 가지 물체를 이용한 작업을 시도했다. 동일한 종류의 물체를 조합, 결합, 누적시키기도 했고, 특히 60년대 이후 적극적으로 폐품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어, 정크 아트 Junk Art(폐품 조각)의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었다. 정크 아트는 주로 소비 사회의 쓰레기인 깡통, 플라스틱, 유리 등을 미술에 결부시켜 산업 사회에 처한 인간의 현실성을 극대화시켰다. 이어서 70년대 후반에는 투명한 통 안에 쓰레기를 담거나 많은 시계에 시멘트를 발라 쌓기도 하는 등 일명 <집적>시리즈를 선보였다.

폐품이 지닌 예술적 마력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했던 아르망의 예술적 관점과 태도는 1969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그의 회고록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대상(폐품과 오브제)들이 스스로 조립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중략)··· '우연'이 나의 기본 재료이며, 백지 그대로의 페이지이다." 아르망은 우연에 근거한 사물의 조화로운 집합과 집적을 작업의 중요한 방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자동차를 이용한 작품은 시각적인 재미를 주고 있다. 파리 근교 몽쉘 공원 안에 설치된 <장기 주차장>은 아르망의 작품 중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1982년에 제작된, 높이가 무려 19.5m, 옆면의 길이가 6m인 <장기 주차장>은 59대의 화려하게 채색된 자동차와 산업 사회 건축 구조물의 근원적인 재료인 1600여 톤의 시멘트의 만남으로 단순히 폐차되어 버려지는 자동차를 미술적 시각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자동차의 집적 외에도 1980년대 이후 그는 동일 물체의 나열과 조합을 시도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다양한 악기와 기계 부품들을 절단하고 집적하여 우연한 조형미를 발견해낸 것이다.

아르망의 최근 작업 경향은 수직과 수평으로 분할된 사각 틀 안에 동일한 물체들을 가지런히 배치하는 것으로, 간결하고 단순한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단순한 사물들의 우연한 만남과 반복, 집적 등을 보여주는 아르망의 작품 시리즈는 자연스러운 미적 쾌감을 전해주는 소통의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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