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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조각사

절대의 미 리처드 세라

by _____seula 2023. 7. 9.

거대한 녹슨 철판이 물질 자체의 재질감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건축의 기본 구조물처럼 도시의 광장에 세워져 있다. 이것이 조각 작품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기념비적 조각의 개념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8~)는 기존의 조각적 이미지를 바꿔버린 미국의 대표적 조각가이다. 그는 공사장에서 쓰이는 대형 철판을 용접하거나 볼트와 너트로 조립하고 휘거나 구부려서 자유로운 형태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인공으로 조성된 넓은 도시의 광장과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굳건하게 설치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생계를 위해 철공장에서 일한 경험은 철을 주재료로 무리없이 다루는 데 도움이 되었다.

초기 작품은 1966년에 고무로 된 벨트를 벽면에 설치하는 시리즈 작품으로서 일정한 형식과 특정한 이미지가 없는 작품 경향을 보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로버트 스미슨, 낸시 홀트, 칼 앙드레, 도널드 저드 그리고 영상을 주로 다루었던 브루스 노먼 등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를 했다. 당시 예술의 흐름은 미니멀리즘을 비롯하여 대지 미술, 개념 미술, 해프닝 등 새로운 미술의 흐름이 주도하고 있었다. 리처드 세라 역시 전위 예술의 급속한 확산에 관심을 가지면서 형태와 형식을 통한 개념성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의식에 힘입어 이중으로 된 넓은 납판을 두루마리 형태로 감은 <이중의 틀>(1968)과 납을 녹여 뿌려서 마치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기법을 연상시키는 작품 등을 제작했다. 1969년에 납을 녹여서 만든 <주조>라는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구성 방식 중 하나인 반복과의 관련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리고 같은 해에는 철판을 쌓아올리는 작업도 했다.

1970년대로 들어오면서 리처드 세라는 본격적으로 기하학적인 형태에 기반을 둔 철판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주로 지표면 위에 낮게 깔리는 원 형태의 철판에서 수직의 형식에 이르기까지 균형과 조화를 염두에 둔 작품을 제작했다. 이런 단순함에서 우러나오는 절제된 조형 언어는 20세기 초 근대 조각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브랑쿠시의 영향을 보여준다. 리처드 세라는 브랑쿠시의 작업실에서 본 <무한주>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브랑쿠시의 여러 작품에서 보이는 매끄럽고 각진 형태의 윤곽선과 양감은 그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이 점은 리처드 세라의 작품에서 보이는 구조 적인 형식과 단순한 형태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리처드 세라는 실내 공간에서 벗어나 외부에서만 실현 가능한 커다랗고 기다란 작품을 제작했다. 주변 환경을 고려한 일련의 철판 작업은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가 제작되었고, 도시 공간이나 야외에 세워져 관객들을 함께 참여시키고 경험하게 했다. 그의 철판 조각은 조각의 형태나 조각적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개념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는 매우 접근하기 어려운 과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리처드 세라는 현대 미술이 가지고 있는 난해한 영역을 펼쳐보이면서 전통적인 조각적 인식에 도전하고 구조 개 념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확장에 주목했던 용기 있는 조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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