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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조각사

플라스틱을 이용한 조각가 토니 크랙

by _____seula 2023. 7. 9.

넘쳐나는 물질과 버려지는 산업 폐기물 속에 정신성과 고고학적인 가치와 미학적 태도를 이입시킨다면 예술의 표현 가능성은 크게 확장될 것임에 틀림없다. 영국의 조각가 겸 설치 미술가 토니 크랙(Tony Cragg, 1949~)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자신의 예술적 지향점을 이룩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산업 폐기물인 오브제를 조각의 매체로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현대의 대량 생산과 그에 맞물린 대량 소비로, 버려지고 쓸모없어진 많은 잡동사니 물질은 그의 작품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재료이다.

1949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현재 독일의 뒤셀도르프 미술학교 교수로 있는 토니 크랙이 산업 재료인 화학 물질과 공업 제품을 많이 사 용하게 된 것은 화학자의 길을 걸으려고 했던 그의 젊은 시절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항공기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적인 감각과 과학고등학교 재학 시절 과학교육을 받은 것이 토니 크랙의 작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졸업 후 국립고무연구소리는 미술과 거리가 먼 연구소에서 근무했으나 예술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1973년 결국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창작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어떤 작품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벗어나 이미 만들어진 기존의 산업 폐기물을 이용하여 바닥과 벽에 설치하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미니멀리즘이나 대지 미술 작업에 매료되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토니 크랙 자신이 도널드 저드, 솔 르 위트, 칼 앙드레, 리처드 롱 등의 예술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토니 크랙은 6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는 초기 작업 시기에 끈 묶기 직업과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했다. 또한 나무, 돌, 자갈, 모래 등 자연물을 이용한 행위와 설치 작품을 병행하기도 했는데, 특히 해변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 윤곽을 따라 그리는 행위를 촬영해놓은 사진 작업(1972년)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 다양한 실험을 거쳐 7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파편화된 물체를 기하학적 형태로 쌓거나 바닥과 벽에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조각조각의 플라스틱을 이용하여 바닥과 벽에 다양한 모양으로 뿌리는 작업을 했는데, 정확하지 않은 모자이크 형식을 취하는 이러한 작품들은 마치 오래된 화석이나 유물을 발굴해낸 것 같은 고고학적인 의미와 해석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은 토니 크랙이 미술학교 시절 품고 있었던 지질학과 화석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산산히 부서져 있는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 파편은 양적인 응집력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입체 작품에 대항하는 해체된 조형 어법을 보여준다.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은 사각형의 <스펙트럼 Spectrum>(1983)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바닥에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색의 플라스틱 파편들을 가지런히 병렬시켜 놓은 것인데 하나하나의 파편들이 정사각형 안에 배열되어 커다란 회화 작품을 연상시키고 개별적인 조각조각들이 모여 전체라는 개념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화려하고 저속한 원색의 싸구려 플라스틱 파편들이 그 고유의 용도와 의미에서 벗어나 특이한 미적 취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985년의 작품 <플라스틱 팔레트 2번> 또한 화학 물질도 아름다운 시각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관람자는 싸구려 플라스틱 오브제를 활용한 흥미로운 작업과 보잘것없는 물질을 승화시킨 작가의 역량에 즐거움을 느낀다. "버려진 재료를 다시 드러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회화에서 팔레트를 다루듯···" 이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플라스틱 파편을 통해 현대 소비 사회의 모습을 재구성해보고자 한 그의 미학적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후에도 그는 오브제들을 사슬로 연결하거나 쌓아올리는 작업을 하고, 청동으로 주조한 동물 형상을 연결한 작품을 선보이는 등 끊임없이 변신을 이루었다.

이처럼 토니 크레그는 다양한 재료를 기초로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 의식을 드러냈으며 또한 역사성에 기반을 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자연스럽게 묻는 개념 미술을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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