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 추구 브루스 나우만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처럼 몇천 년에 걸쳐 이루어진 문명의 퇴적이 현대에는 몇백 년, 아니 몇십 년만에 하나의 양식으로 성립되는 것을 볼 때 시간의 연속성과 정신성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실로 무상함을 느낀다. 미적 태도에 따른 미술 양식이 그 시대의 정신성과 밀접함을 보이며 그 시대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것은 1900년대의 수많은 양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양식의 생성에는 빠른 속도로 진보를 거듭해온 과학 기술의 몫을 제외할 수 없다. 생활의 편리함만이 아니라 철학적 사고와 가치관을 급속히 변화시키며 예술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 과학 기술은 그 만큼 조형 언어의 확대를 도와주었다.

과거의 평면적이거나 입체적인 기본 구조에 충실했던 예술 작품을 현대에는 영상과 음향을 포함한 매스미디어가 대신하게 된 것을 보면 인간 정신을 순식간에 지배한 과학 문명의 강력한 힘을 체감하게 된다. 이와 같은 현대 미술의 변화를 이끄는 주역은 최첨단의 기술과 문명의 혜택을 받은 미국 중심의 작가군으로, 그 중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1941~)은 가장 미국적인 전형을 보여주는 현대 작가로 불린다. 그의 다양한 작품 경향과 대중성에 기인한 미적 태도는 현대인의 삶에 밀착되어 현실성을 호소하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독일의 경제 월간지 캐피탈이 세계의 미술가들을 대상으로 예술적 성과와 업적을 순위로 정했는데 브루스 나우만이 1위로 선정되면서(1992 ~1996년 연속 1위) 최고의 현대 미술가로 인정받았다. 이와 같은 명성에 걸맞게 그는 인간의 사회성에 관한 제문제를 왕성한 활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브루스 나우만은 미국 태생으로 대학에서 미술뿐 아니라 심리학과 수학도 전공했다. 또한 그는 회화와 조각 외에도 퍼포먼스,  영화, 건축, 음악, 사진, 오디오, 비디오 등 거의 모든 예술의 영역을 넘나드는 멀티미디어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60년대 중반 회화를 그만두고 비디오에 눈을 돌렸다. 신체 일부분을 크게 확대하여 거꾸로 세우거나 뒤집어서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브루스 나우만의 비디오 속에는 쉼 없이 말하는 입이라든가 빙빙돌고 있는 인물이나 머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조각에서도 돌가는 사람의 머리를 이용하여 작업을 했다. 또한 네온을 구부려 사람 형태를 만들어서 반복적으로 움직이게 한 작품이라든가 문자로 구성한 네온 등도 있는데, 모두 관람객으로 하여금 낯설고 긴장된 상태를 느끼게 한다. 더욱이 그의 작품 속에는 울부짖음과 고함, 신음 등 다소 원시적인 소리들이 결합되어 주제의 이미지를 더욱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1991년 작품 <인류학/사회학>은 공격적이고 본능적인 말들을 반복해서 외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6대의 모니터와 3개의 대형 스크린에 비추어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작품으로 직설적인 메시지 전달과 관객과의 상황 설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브루스 나우만은 영화를 이용한 영상 작업과 비디오 테이프를 사용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전시장의 벽면 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 인간 존재에 대한 의미있는 접근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작동시켜 신선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오늘날 현대 미술의 주된 표현 방식이 되어 버린 영상 매체(비디오 테이 프, 음향,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영상 미술은 대중적으로 접하기 쉬운 영화 의 한 장면들을 편집하기도 하고 컴퓨터와 전자 기술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상 예술은 주로 사회 의식을 담고 있으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와 도시 환경 속의 인간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점은 브루스 나우만의 작품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며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부조리와 심리적 갈등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연극적 표현이 첨가된 브루스 나우만의 영상 미학은 점점 확대되어가는 영상 매체 예술의 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