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예술가들의 미적인 전개는 수많은 물질의 범람만큼이나 다양하다. 특히 뒤샹 이후 보편화된 레디메이드의 사용은 물질 숭배 사상과 맞물려 난해한 미의식을 쏟아냈다. 또한 싸구려 모조품이나 잡동사니 쓰레기까지 이용하는 현대 미술의 전개는 과연 이것이 아름다움을 실현시키는 미술인가하는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그러나 저급한 물질의 사용과 대중적인 의식의 등장은 상류 사회의 고급 미술이 지닌 고귀함과 상반되는 보편적인 미술의 확산을 부추기며 하나의 미술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명 '키치' 라고 하는 이 새로운 장르는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실현되었다. 독일어 'Verkitschen(베르키첸)'에서 유래된 말로서 가짜, 쓰레기, 싸구려' 등을 지칭한다. 이는 부유층들이 쓰다가 내다버린 물건들을 빈민층이나 하층민들이 다시 사용하는 것에 빗대어 생겨난 용어로서 미술에서는 매우 조악하고 통속적인 작품을 의미한다.
키치 미술은 대량 생산된 모든 값싼 물질과 조잡한 소비재를 사용하여 작품화했는데 진열장의 농구공, 전자제품, 인형, 플라스틱, 바로크·로코코 풍의 값싼 장식물, 금박을 입힌 조잡한 제품, 가짜 꽃 등을 생명력 있는 미술품으로 둔갑시켰다. 키치 미술이 지닌 이국적 취향의 촌스러운 분위기는 대중적인 취향을 스스럼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취향의 키치 미술이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장 미국적인 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키치 미술은 팝 아트와 근접하지만, 팝 아트보다 통속적이며 엘리트주의 미술에 반기를 들고 대중성에 바탕을 두고자 했다. 이 점은 키치 미술이 과거 예술의 순수하고 고귀한 관념성에서 해방되어 일상적인 소통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종과 계급을 허물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중성의 미학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키치 미술의 의식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저속한 취향이지만 긍적적인 측면으로는 현대 산업사회의 미적 태도의 변화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새로운 현대 미술의 경향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 1955~)는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평가되는 작가이다. 그는 대량 복제에 의한 대중적 상품을 미술의 중심에 끌어들여 이해하기 쉬운 일상적인 미술의 통로를 제시해주었다. 제프 쿤스는 특히 금기시되어온 성(性)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었는데 이탈리아 포르노 배우였다가 국회의원까지 지낸 그의 아내 치치올리나와의 외설스럽고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을 공개적으로 작품화시켜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은 퇴폐적이고 외설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감취진 욕망을 드러내서 그들의 일상적인 면을 현실화시키고 본질화시키는 것에 의의를 둔 것이다. "비틀즈의 음악이 높은 수준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파고드는 음악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다"라는 제프 쿤스의 말을 통해 대중과의 호흡을 원하는 키치 미술의 본질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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