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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조각사

그리스 미술 조각(고전 후기)

by _____seula 2023. 5. 17.

최초의 누드 조각,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기원전 431-404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아테네는 쇠퇴하게 되었고, 스파르타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정치적인 내부 혼란을 겪게 되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전체에는 몰락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고 정치적, 사회적 불안으로 페리클레스 시대 폴리스의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이상과 정신은 급격히 쇠락했다. 또한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폴리스적 시민 의식은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고, 도시 곳곳에 만연된 소피스트들의 현학적 사고와 언변술의 영향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과 같은 철학자들은 도덕적 진리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상을 펼치기도 했다. 평등과 자유 그리고 민주적 형태의 사회 구조가 붕괴된 그리스에는 개인적 성향의 휴머니즘이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었는데 미술에서도 역시 인간의 감정 이입을 우선으로 하는 감각적인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프락시텔레스의 대표작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작품을 통해 시대적 변화에 민감한 조형 욕구를 읽을 수 있다. 

그리스 미술에서 아르카익기와 헬레니즘기 사이에 있는 고전기를 흔히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라 부른다. 고전기는 일반적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미론, 폴리클레이토스, 페이디아스가 활동했던 시기를 고전 전기라하고 프락시텔레스, 리시포스, 스코파스 등의 3대 조각가가 활동했던 시기를 고전 후기라고 구분한다. 고전 후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출현으로 그리스의 전 영토가 로마의 지배에 놓이기 전까지의 70여년에 걸친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의 조각은 고전 전기에 나타났던 신상과 신전의 숭고주의 양식과는 다른 미적 태도를 보인다. 즉, 개인적 감정을 표출하면서 인간의 감수성을 나타내는 우미의 양식을 느낄 수 있다. 

고전 후기 프락시텔레스와 함께 활동한 조각가 스코파스는 비장함과 격정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도취의 마이너스>, <헤라클레스 란즈돈> 등의 작품을 남겼다. 리시포스는 다수의 청동 조각을 했는데 인체의 비례를 8등신까지 끌어 올리는 등 새로운 시각으로 인체의 이상을 제시했다. 잘 알려진 <아폭시오메노스>, <파르네제의 헤라클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흉상> 등의 작품을 남겼다. 프락시텔레스는 대표작인 동시에 문제작인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를 발표했는데 페이디아스 양식이라 일컫는 착의의 조각(마치 젖은 옷을 입은 듯한 여체의 조각)에서 벗어난 최초의 누드 조각이다. 이 기법은 그리스 조각에서 대단히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그만큼 많은 추종을 불러일으켰다.

크니도스 도시를 위해 제작한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매우 부드럽고 편안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조각으로써 창녀를 모델로 하여 약 2m 크기의 8등신 비례로 제작되었다. 최초의 완전한 누드 조각상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 조각상은 헬레니즘뿐 아니라 그 후 세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많은 모조 작품도 제작되었다. 누드의 우아함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콘트라포스토가 적용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S자 형태의 조형에서 한 걸음 발전하여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섬세함을 지니고 있는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상부 가슴의 표현이나 전체적인 볼륨감을 통해서 20세 안팎의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관능적인 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목욕을 시작하기 위해 막 벗은 옷을 항아리 위에 놓는 동작을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게 묘사했는데, 여인의 부드러운 피부와 단단한 항아리에 올려놓은 둔탁한 옷의 표현이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오른손으로 국부를 살짝 가린 표현과 단아한 머리카락 그리고 약간 수줍음이 엿보이는 여인의 은근한 시선에서 절제된 조형 언어를 느낄 수 있다. 원작은 살아 있는 듯한 여체미가 느껴지도록 청동으로 만든 후 그 위에 채색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의 작품은 원작을 충실하게 모각한 대리석 조각이다. 프락시텔레스는 이 조각을 관능성을 보다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례를 8등신으로 했다. 이처럼 관념적인 비례를 이용한 조각은 서양 조각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규범이 되었다.

 

신화의 장면, 헤르메스와 아기 디오니소스

고대 비평가들이 피디아스와 더불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예술가라고 칭송한 프락시텔레스는 인체 조각에 탁월함을 보여준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와 함께 고전 후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헤르메스와 아기 디오니소스>도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완벽하리만큼 정확한 균형미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근육과 피부의 표현은 마치 살아 숨 쉬는듯한 착각을 들게 할 정도인데, 해부학에 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지식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처럼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의 피부와 같도록 대리석의 질감과 색깔을 염두에 두고 조각된 이 작품은 청동 원작을 보고 로마 시대에 대리석으로 모각한 작품이다. 특히 S자의 콘트라포스토는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이 조각은 헤르메스가 어린 디오니소스에게 다정다감한 애정을 보내고 있는 장면으로, 이들에게 얽힌 신화는 다음과 같다. 제우스가 테베의 왕녀 세멜레에게 아기를 잉태시키자 질투심 많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이 사실을 알고 복수하려고 했다. 제우스는 아기 디오니소스를 구하기 위해 전령 헤르메스에게 헤라를 피해 멀리 인도의 니사 산속에 사는 님프에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이 조각은 헤르메스가 니사 산의 님프에게 가던 도중 잠시 쉬며 어린 디오니소스에게 포도송이를 보여주면서 응석을 달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포도송이를 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오른팔 부분은 안타깝게도 잘려 나가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헤르메스와 아기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1877년 발견되었다. 약 216cm에 이르는 이 조각상은 약간 과장된 비례와 굴곡을 특징으로 한다. 이 작품에는 <그니도스의 아프로디테>에서도 느낄 수 있는, 어색함이 없는 완벽한 신체와 부드러운 피부 표현으로 프락시텔레스만의 특유한 표현 기법이 담겨있다. 그윽한 미소를 머금은 헤르메스의 애수에 젖은 얼굴 표정에서 인간의 용모를 닮은 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8등신의 비례는 부드러운 곡선과 어우러져 관능미를 물씬 풍기고 있다. 다소 거칠게 표현된 머리카락과 깊은 옷주름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체와 대조를 보이며 동시에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프락시텔레스의 조각은 정면성의 법칙을 거부하고, 관념적이던 초기 고전 양식의 숭고미에서도 벗어나 있다. 또한 인체의 재현에서 이탈하여 완전한 입체 조각의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충만함과 자신감, 벨베데레의 아폴론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강한 남성상의 전형으로 알려진 아폴론은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으로, 그리스 신화의 모든 신들 중 가장 영향력이 켰으며 널리 숭배되었다. 다른 신들이 모두 아폴론을 두려워할 만큼 강했으며,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인간의 죄와 악을 깨닫게 해주고 종교와 법령을 통해 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을 도와주었다. 가장 그리스적인 신으로 알려진 아폴론은 흔히 밝음, 강함, 순수함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태양을 연상케 하는 '포이보스'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아폴론이 조각된 여러 작품 중 일반인이나 미술인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벨베데레의 아폴론>이다. 벨베데레는 '전망대'를 뜻하며, 이 조각상이 놓여 있던 로마 교황이 생활하는 궁전의 방을 말한다. <벨베데레의 아폴론>은 미술사가 빙켈만이나 문학가 괴테 등이 가장 완벽한 고전미를 갖춘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조각가 레오카레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기원전 4세기 로마 시대의 복제품이 잘 알려져 있고,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도 많은 대리석 복제 조각이 존재했다. 높이 약 224cm인 이 조각상은 역시 S자의 균형 잡힌 몸매와 정확한 비례가 돋보이며, 다소 정적이고 절제된 인체의 표현에서 신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이상적인 장중함과 고요함이 우러나오고 있다. 아폴론의 오른손은 월계수 가지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월계수는 아폴론의 애인 다프네가 아폴론에게서 도망치려고 애쓰다가 아폴론의 손에 닿자 월계수로 변했다는 신화를 말해주고 있다. 즉, 월계수는 다프네에 대한 아폴론의 애절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왼손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괴물 뱀 퓌톤을 퇴치한 활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혹은 악기 리라를 들고 있는 것으로도 추정) 보복과 치유, 정화를 상징한다. 아폴론 조각상은 젊은 남자의 상징으로서 대체로 수염이 없고, 옷을 입은 상태로 묘사된다. 하지만 <벨베데레의 아폴론>은 건강한 남성상의 표본을 제시하고 있다. 약간 뒤틀린 몸의 구조는 기존의 조각에 나타난 규범에서 벗어난 새로운 입체의 해석으로 볼 수 있는데, 길게 뻗은 왼손의 표현과 강하게 돌린 두상의 시선을 통해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한 발을 내디딘 아폴론의 포즈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이는데, 신화의 한 장면인 괴물 퓌톤을 없앤 만족감과 승리의 감정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옷자락은 다소 작위적으로 표현되었지만 강인하고 위엄있는 아폴론의 자태에서 강렬한 사실감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이마를 강조하기 위해 묶어 올린 앞머리의 모양은 생기 있는 젊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처럼 아폴론의 용모에 대한 조각가의 의도적이고 과장된 표현은 우리에게 완전하고 훌륭한 그리고 아름답기까지 한 아폴론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처럼 신화 속 그리스 신들을 조각이나 그림을 통해 즐길 수 있는 것은 탁월한 예술가들의 재능 덕분이다. 인간과 같은 모습의 신은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그러한 신을 창조해낸 예술가들과 그들이 타고난 재주와 기술 또한 신의 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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