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장치의 요란한 소리와 움직임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간을 점유하며 기계의 역동성을 자랑하는 조각을 우리는 일명 키네틱 아트 Kinetic Art라고 부른다.
다다와 미래주의에 기원을 둔 실험적 예술인 키네틱 아트는 여러 작가군에 의해 실험되고 제작되었다. 1955년 파리의 드니즈 르네 Denise Rene 화랑에서 개최된 '움직임 전 La Mouvement'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지목받은 장 팅겔리(Jean Tinguely, 1925-1991)가 그 대표 주자이다. 팅겔리를 비롯 폴 뷔리, 뒤샹, 아감, 소토, 칼더, 바사렐리, 야콥슨 등 모두 8명의 작가가 이 전시에 출품했는데 그 중 장 팅겔리의 작품이 단연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의 작품은 오브제를 사용한 다양한 움직임의 실험으로 움직이는 조각을 하나의 예술적 경향으로 이끌어냈다.
1925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장 팅겔리는 1952년 파리에 정착하면서 미술계에 등장한다. 그는 60년대 유럽의 신사실주의(누보레알리즘, Nouveau Realisme)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그보다 키네틱 아트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독자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팅겔리의 기계 조각은 주로 폐품이나 산업 쓰레기를 이용하여 강한 소음을 일으키며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려는 의도를 지닌 장치이다. 장 팅겔리는 당시 실험성 강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다다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 즉 구축적이고 정적인 기존의 아카데믹한 조각에서 탈피하여 다소 해학적이고 재미있는 기계 장치의 효과를 이용한 조각을 만들었다.
팅겔리의 작품에는 무작위로 자동 그림을 그리는 기계 장치 <메타메틱 Meta-Matics>이 있는데, 이것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의 드리핑 Dripping(뿌리기)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뉴욕에서 전시되었던 '기계가 기계의 예술을 위해 죽음을 시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뉴욕 찬가>가 있다.
1963~1964년에 제작되었던 <유레카 Eureka>와 <발루바 Baluba> 시리즈 그리고 <로토자자 Rotozaza>에서는 갖가지 운동과 소리에 의한 음향 효과를 보여주면서 풍자와 유희를 드러냈다. 70년대의 작품 <라 비토리아 La Vittroria>는 신사실주의 10주년 기념을 위해 밀라노에서 개최된 축제에 선보인 작품으로 11m 크기의 붉은색 남성 성기 모양이다. 그 끝에서 탄환이 튀어나와 불꽃을 일으키며 250m 높이로 치솟아 근처에 있던 1만 마리의 비둘기를 날리는 자극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장 팅겔리의 작품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하고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 예로 파리 퐁피두 센터 광장의 <스트라빈스키 분수>(1983)가 있다. 팅겔리의 아내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의 작품과 함께 설치되어 있는데, 유희적이면서 편안한 즐거움을 주는 갖가지 모양의 동물 형태와 오브제를 이용한 작은 분수는 도시 환경에서 조각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고 대중에게 친숙한 휴식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도시 한가운데 등장한 움직임에 의한 예술 작품은 육중한 무게와 권위를 자랑하며 조성된 환경 조각에서 벗어나 색다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키네틱 아트에는 실제 움직임 없이 움직임을 보이게 하는 일명 옵아트 Optical Art라는 경향이 존재한다. 색의 연결과 기하학적인 모양을 통해 착시 현상을 일으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로는 바자렐리(Victor Vasarely, 1908-1997), 소토(Jesús Rafael Soto, 1923-2005) 등이 있으며 키네틱 아트의 한 부분으로 미술사에 기록된다. 이와 같이 시지각적인 현상을 다루는 것이나 자연 바람으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 기계적인 힘을 이용하여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 등이 모두 키네틱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팅겔리를 위시하여 조지 리키(George Lickey, 1907-2002), 타키스(Vassilakis Takis, 1925-2019), 폴 뷔리(Pol Bury, 1922-2005) 등의 작가들은 앞서 열거한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그에 따라 독특하고 실험적인 조각 형식을 취했다. 20세기 현대 미술에 지대한 공헌을 한 키네틱 아트는 지난 반세기를 넘어 오늘날의 실험적 예술 뿐 아니라 미래의 조각 예술에도 많은 실험성을 제공할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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