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프랑스의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 1930-2003)는 세자르를 포함하여 이브 클라인, 아르망, 스포에리, 장 팅겔리 등을 누보레알리즘 Nouveau Realisme 계열의 조각가라고 명명했다. 누보레알리즘은 1960년 레스타니에 의해 이태리 밀라노에서 처음 결성되었다. 이후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사회의 현실을 논쟁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다'라는 취지로 출발했다. 누보레알리즘은 급속도로 진전되는 산업 사회와 그에 따른 기계 문명에 결부되어 일어났던 미국의 팝 아트 Pop Art와 때를 같이하여 일어났다.
누보레알리즘은 산업적인 미술, 즉 정크 아트 Junk Art라 불리기도 하며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각성을 주된 내용으로 표현했다. 이 계열의 대표적인 작가 세자르(César Baldaccini, 1921-1998)는 1921년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에꼴 드 보자르에서 수학했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상당히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50년대 그의 초기 작품은 주로 금속 폐기물을 용접하여 나체 인물상이나 동물, 물고기, 곤충 등의 형상을 매우 재미있고 순발력 있게 표현한 아상블라주의 금속 조각이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엄지손가락>은 1960년 중반부터 만들어졌는데, 첫선을 보인 것은 1965년 말 프랑스의 클로드 베르나르 Claude Bernard 화랑에서 손을 주제로 열린 국제 조각전이다. 세자르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확대한 이 작품은 약 41cm 높이로 당시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후로 인체의 부분 확대에 관심을 가져 손, 발, 여자의 젖가슴 등을 확대 제작했다. <엄지손가락>은 신체의 일부를 이용한 조각으로서 의미심장함을 간직한 하나의 기념비이다. 사람의 키보다 더 높은 크기로 혹은 작은 건물 높이로 제작된 거대한 손가락은 정교한 손의 지문을 표현하고 있으며 세상의 으뜸과 제일을 상징하는 듯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분명 고전적인 조각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벼운 흥미와 유희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세자르의 작품 중 호기심을 유발하는 또 다른 작품은, 우연한 시도에 따른 결과를 보여주는 압축, 팽창 시리즈이다. 이것은 1960년대 누보레알리즘 경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당시 아르망이나 장 팅겔리의 조각에서도 우연성에 기인한 작품들을 엿볼 수 있다. 세자르의 압축 시리즈는 자동차, 모터사이클 그리고 빈 깡통이나 고철 덩어리에 강한 힘을 가해 압축시켜서 육면체로 만들어낸 작품으로 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편 폴리우레탄을 녹여 부으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 스스로 팽창하고 응고되면서 거품과 같은 형태가 되는데 순간적으로 팽창된 볼륨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정지 상태의 우연성을 시각화한 것이 바로 1967년 선보인 팽창 시리즈이다. 화학 물질에 의한 조각 아닌 이 조각은 조각의 새로운 영역을 제시하며 1970년경까지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서 실연되었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다양한 물질과 산업 사회의 잔해물에 대한 세자르의 의식은 압축, 팽창 시리즈 그리고 엄지손가락 등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작품들은 다분히 문명 비판적이며, 물질 속에 잠재된 우연의 표현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이처럼 세자르의 작품은 누보레알리즘에 녹아든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가시적인 것에 대한 창의력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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